세제 살 때
세제 진열대 앞에서 몇 분씩 서 있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액체가 편하다는 말과 가루가 잘 빤다는 말이 둘 다 돌거든요. 둘 다 틀린 말이 아닌데 따지는 기준이 다릅니다. 어느 쪽이 좋으냐가 아니라 무엇에 유리하냐로 갈라서 보면 정리가 됩니다.
가루 세제는 물에 녹아야 일을 시작합니다. 물이 20도 아래로 내려가면 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져요. 겨울철 수돗물은 5~10도까지 내려갑니다. 그 물에 가루를 넣고 15분짜리 급속코스를 돌리면 다 녹기 전에 헹굼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액체는 이미 녹아 있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찬물 빨래나 짧은 코스에서는 액체 쪽이 안전한 편입니다. 반대로 40도 넘는 온수를 쓰면 가루가 제 힘을 냅니다.
빨래에 흰 가루가 묻어 나오는 일. 대개 여기서 시작됩니다.
가루에는 알칼리 성분과 산소계 표백 성분이 같이 들어가는 제품이 많습니다. 알칼리는 기름때를 분해하고, 산소계 표백 성분은 40도를 넘는 물에서 반응이 빨라집니다. 작업복이나 행주처럼 찌든 것에 가루를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액체라고 다 중성은 아니에요. 시판 액체세제 8종을 시험한 2025년 결과에서 7종이 약알칼리성(pH 8 초과 11 이하)이었고 중성(pH 6 이상 8 이하)은 1종이었습니다. 울이나 실크는 알칼리를 만나면 섬유가 상하니, 병에 중성이라고 적힌 것을 고릅니다. 색이 진한 옷도 마찬가지고요. 형광증백제가 없는 제품을 고르기도 액체 쪽이 쉽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쪽이 나으냐보다 오늘 빨 것이 무엇이냐가 먼저입니다.
덜 녹은 가루는 사라지지 않고 세탁조 바깥쪽 틈과 배수 통로에 가라앉습니다. 거기에 물때와 섬유 부스러기가 붙으면 곰팡이가 자랄 자리가 됩니다. 빨래에 검은 점이 묻어 나오는 일이 여기서 시작되죠.
액체라고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정량보다 많이 넣으면 헹굼으로 다 안 빠져서 고무 패킹 안쪽에 미끈한 막이 남습니다. 어느 쪽을 쓰든 통세척은 한 달에 한 번.
드럼세탁기 서랍은 대개 세 칸입니다. 왼쪽이 예비세탁, 가운데가 본세탁 세제, 꽃 표시가 찍힌 칸이 섬유유연제예요. 가루든 액체든 본세탁 칸에 넣는 것이 원칙입니다.
액체를 옷 위에 바로 붓는 방법도 쓰이는데, 이때는 세탁조 안쪽 벽 쪽으로 흘립니다. 옷에 직접 부으면 그 자리만 진하게 닿아 얼룩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가루를 통에 오래 두면 습기를 먹어 덩어리집니다. 굳은 덩어리를 그대로 넣으면 물에 못 녹으니 부숴서 넣습니다.
집에서 나오는 빨래의 절반 이상이 찬물에 돌리는 일상복이면 액체가 무난합니다. 수건·행주·아이 옷처럼 삶다시피 빠는 것이 많으면 가루 쪽이 값도 싸고 힘도 셉니다.
둘 다 두고 번갈아 쓰는 집도 많습니다. 다만 한 번의 빨래에 둘을 같이 넣는 건 권하지 않아요. 성분이 겹쳐 거품만 늘고 헹굼이 나빠집니다.
값은 제품마다 많이 벌어집니다. 액체세제 8종의 1회 세탁 비용은 3kg 드럼 기준으로 56원에서 176원까지, 세 배 넘게 차이가 났어요(2025년). 용량 가격이 아니라 1회분 단가를 적어둔 표시로 비교합니다.
세제를 다 써서 새로 고를 때